diff --git a/content/posts/2/mindhunter.md b/content/posts/2/mindhunter.md index bb71063..3778348 100644 --- a/content/posts/2/mindhunter.md +++ b/content/posts/2/mindhunter.md @@ -36,7 +36,7 @@ group = "비옽 2호: 마인드헌터" 우리가 보았던 웬디의 경험처럼, 이 시리즈에는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 상태가 가득하다. 시리즈의 첫 시작부터 그런 상태였다. 홀든은 인질범을 흥분시키지 않을 의도로 인질범에게 접근하지만, 결국 인질범의 충동을 꺾지 못하고 눈앞에서 그가 죽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물론 이렇게 의도와 결과가 불일치하는 일은 인간사의 갈등을 만들어 내는 보편적인 지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이 겪는 갈등의 개별적 요체로서 해당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은 이런 상황을 단순히 평범한 설정으로 넘기기 힘들게 한다. 그리고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가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세부 요소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들여다볼 여지를 남긴다. -홀든이 자기의 여자친구 데비를 술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데비는 홀든에게 ‘일탈deviancy’이란 단어를 꺼낸다. 홀든은 그 단어가 익숙지 않아 “그게 뭔데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나중에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홀든은 교장 선생에게 미리 제출한 강연록에 ‘일탈적deviant’이라는 말을 포함시킨다. 교장은 이 말을 아이들 앞에서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홀든은 이 말을 꺼내지 않기 위해 애써 우회적 단어들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렇게 복선처럼 우회하는 요소들이 이 시리즈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우리를 찾아와 인물의 내면 상태를 다시금 되짚을 수 있도록 한다. 여자친구가 언급했고 홀든이 어느샌가 사로잡혔던 ‘deviancy’란 단어는 다시금 홀든의 언어로 복귀한다. 이후 이 단어는 홀든이 교장에게 투사하게 되는 의식으로써 자리하다가, 죄인인지 아닌지 좀체 모를 교장의 얼굴과 몸짓을 경유하여 다시금 홀든에게 돌아간다. 즉, 우리로 하여금 홀든의 일탈적인deviant 상태를 보도록 한다. 이렇게 의도된 어떠한 발화는 최초의 의도성을 넘어서서 다른 과녁으로 향한다. 의도는 그렇게 다른 과녁을 향해 비껴가거나 어떤 과녁을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인물 주위를 뱅뱅 돈다. +홀든이 자기의 여자친구 데비를 술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데비는 홀든에게 ‘일탈deviancy’이란 단어를 꺼낸다. 홀든은 그 단어가 익숙지 않아 “그게 뭔데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나중에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홀든은 교장 선생에게 미리 제출한 강연록에 ‘일탈적deviant’이라는 말을 포함시킨다. 교장은 이 말을 아이들 앞에서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홀든은 이 말을 꺼내지 않기 위해 애써 우회적 단어들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렇게 복선처럼 우회하는 요소들이 이 시리즈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우리를 찾아와 인물의 내면 상태를 다시금 되짚을 수 있도록 한다. 여자친구가 언급했고 홀든이 어느샌가 사로잡혔던 ‘deviancy’란 단어는 다시금 홀든의 언어로 복귀한다. 이후 이 단어는 홀든이 교장에게 투사하게 되는 의식으로써 자리하다가, 죄인인지 아닌지 좀체 모를 교장의 얼굴과 몸짓을 경유하여 다시금 홀든에게 돌아간다. 즉, 우리로 하여금 홀든의 일탈적인deviant 상태를 보도록 한다. 이렇게 의도된 어떠한 발화는 최초의 의도성을 넘어서서 다른 과녁으로 향한다. 의도는 그렇게 다른 과녁을 향해 비껴가거나 어떤 과녁을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인물 주위를 뱅뱅 돈다.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는 홀든의 동료 빌도 비켜갈 수 없다. 그가 마주하는 가장 사적인 난제는 바로 입양한 아들 브라이언이다. 빌과 그의 아내 낸시는 사랑을 주기 위해 브라이언을 입양했지만, 그런 의도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브라이언이 저질렀던 ‘실수’ 또한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친구가 없어 보이는 브라이언은 아마도 자신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아무도 없는 집에 동네 친구들이 발을 들여놓게 했고, 죽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묶어 놓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 브라이언은 빌이나 낸시에게나 미궁과도 같은 존재이다. 낸시는 브라이언이 연거푸 잠자리에서 오줌을 지리자 자신의 지식 내부에서 브라이언의 행위를 해석하려 하지만, 어쩐지 그런 시도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브라이언은 빌에게 범죄자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되었다. 아니, 찰스 맨슨과 같은 범죄자보다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빌의 의도는 제대로 된 과녁에 맞지 못한 채 계속해서 빗나가는 중이다. diff --git a/posts/2/mindhunter/index.html b/posts/2/mindhunter/index.html index f1a60be..cec60fe 100644 --- a/posts/2/mindhunter/index.html +++ b/posts/2/mindhunter/index.html @@ -89,7 +89,7 @@

내가 홀든처럼 세부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중심 서사에서 비켜나 있는 듯한 어느 장면에 있다. FBI의 자문으로 들어온 웬디의 주요한 사적 서사는 그녀의 레즈비언 정체성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 서사 바깥에 있는 듯한 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새로운 거처 지하 세탁실에서 고양이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매일 지하에 내려가 고양이 먹이를 두고 온다. 어느 날에는 먹이가 담긴 캔이 비어 있고, 어느 날에는 먹이가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다 또 다른 어느 날에는 내용물이 그대로 담긴 캔 내부에 벌레가 우글거리면서 캔 바깥으로 기어 나온다. 웬디는 그 우글거리는 벌레를 보고 뒷걸음치듯 지하실을 벗어난다.

중심 서사로부터 벗어나 배치되는 잉여적이면서도 세부적인 이러한 장면은 무엇보다 웬디라는 인물을 성격화하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는 그에게서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하면서 차갑고 냉정하게만 느껴졌던 웬디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웬디의 그런 성격으로부터 실행되는 의도적 행위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맞이하고 만다. 우리는 이를 통해 ‘의도’가 의도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 의도가 전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빚는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철학자 스탠리 카벨은 『우리는 의도대로 말해야 하는가?Must We Mean What We Say?』에서 우리의 의도와 그 결과 사이의 불일치에 주목한다. 카벨의 주장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간결하다. 우리는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말하지만, 그 의도는 좀처럼 의도된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더 이해하기 쉽겠다. 한국의 공교육을 받고 자란 이라면 누구든 학창 시절에 단소를 불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소를 불기란 참 어렵지 않던가? 내 머리와 손가락은 ‘솔’을 의도하는데, 배출되는 음은 나의 의도를 전혀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는 의도와 효과의 불일치 사이를 메우기 위해 부단히 연습한다. 충분히 연습한 뒤에야 솔 음을 제대로 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보았던 웬디의 경험처럼, 이 시리즈에는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 상태가 가득하다. 시리즈의 첫 시작부터 그런 상태였다. 홀든은 인질범을 흥분시키지 않을 의도로 인질범에게 접근하지만, 결국 인질범의 충동을 꺾지 못하고 눈앞에서 그가 죽는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물론 이렇게 의도와 결과가 불일치하는 일은 인간사의 갈등을 만들어 내는 보편적인 지점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이 겪는 갈등의 개별적 요체로서 해당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제시된다는 점은 이런 상황을 단순히 평범한 설정으로 넘기기 힘들게 한다. 그리고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가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세부 요소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들여다볼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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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이 자기의 여자친구 데비를 술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데비는 홀든에게 ‘일탈deviancy’이란 단어를 꺼낸다. 홀든은 그 단어가 익숙지 않아 “그게 뭔데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나중에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홀든은 교장 선생에게 미리 제출한 강연록에 ‘일탈적deviant’이라는 말을 포함시킨다. 교장은 이 말을 아이들 앞에서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홀든은 이 말을 꺼내지 않기 위해 애써 우회적 단어들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렇게 복선처럼 우회하는 요소들이 이 시리즈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우리를 찾아와 인물의 내면 상태를 다시금 되짚을 수 있도록 한다. 여자친구가 언급했고 홀든이 어느샌가 사로잡혔던 ‘deviancy’란 단어는 다시금 홀든의 언어로 복귀한다. 이후 이 단어는 홀든이 교장에게 투사하게 되는 의식으로써 자리하다가, 죄인인지 아닌지 좀체 모를 교장의 얼굴과 몸짓을 경유하여 다시금 홀든에게 돌아간다. 즉, 우리로 하여금 홀든의 일탈적인deviant 상태를 보도록 한다. 이렇게 의도된 어떠한 발화는 최초의 의도성을 넘어서서 다른 과녁으로 향한다. 의도는 그렇게 다른 과녁을 향해 비껴가거나 어떤 과녁을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인물 주위를 뱅뱅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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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이 자기의 여자친구 데비를 술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데비는 홀든에게 ‘일탈deviancy’이란 단어를 꺼낸다. 홀든은 그 단어가 익숙지 않아 “그게 뭔데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나중에 초등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홀든은 교장 선생에게 미리 제출한 강연록에 ‘일탈적deviant’이라는 말을 포함시킨다. 교장은 이 말을 아이들 앞에서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홀든은 이 말을 꺼내지 않기 위해 애써 우회적 단어들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이렇게 복선처럼 우회하는 요소들이 이 시리즈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우리를 찾아와 인물의 내면 상태를 다시금 되짚을 수 있도록 한다. 여자친구가 언급했고 홀든이 어느샌가 사로잡혔던 ‘deviancy’란 단어는 다시금 홀든의 언어로 복귀한다. 이후 이 단어는 홀든이 교장에게 투사하게 되는 의식으로써 자리하다가, 죄인인지 아닌지 좀체 모를 교장의 얼굴과 몸짓을 경유하여 다시금 홀든에게 돌아간다. 즉, 우리로 하여금 홀든의 일탈적인deviant 상태를 보도록 한다. 이렇게 의도된 어떠한 발화는 최초의 의도성을 넘어서서 다른 과녁으로 향한다. 의도는 그렇게 다른 과녁을 향해 비껴가거나 어떤 과녁을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인물 주위를 뱅뱅 돈다.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는 홀든의 동료 빌도 비켜갈 수 없다. 그가 마주하는 가장 사적인 난제는 바로 입양한 아들 브라이언이다. 빌과 그의 아내 낸시는 사랑을 주기 위해 브라이언을 입양했지만, 그런 의도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브라이언이 저질렀던 ‘실수’ 또한 의도와 결과의 불일치를 드러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친구가 없어 보이는 브라이언은 아마도 자신에게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아무도 없는 집에 동네 친구들이 발을 들여놓게 했고, 죽은 아기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묶어 놓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 브라이언은 빌이나 낸시에게나 미궁과도 같은 존재이다. 낸시는 브라이언이 연거푸 잠자리에서 오줌을 지리자 자신의 지식 내부에서 브라이언의 행위를 해석하려 하지만, 어쩐지 그런 시도는 전혀 먹히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브라이언은 빌에게 범죄자만큼이나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되었다. 아니, 찰스 맨슨과 같은 범죄자보다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빌의 의도는 제대로 된 과녁에 맞지 못한 채 계속해서 빗나가는 중이다.

이러한 빌의 성격을 드러내는 가장 뚜렷한 세부 요소는 바로 ‘담배’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무는 골초 중 골초다. 물론 그 시대는 지금과 달리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행동이 허락되었고, 비행기 내 흡연도 가능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에서 빌만큼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이상하게도 빌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곁에서 함께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빌은 언제나 그 혼자 담배를 문다. 저 멀리 누군가가 후경에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긴 하지만, 거리 때문에 화면에서 그리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 시리즈는 마치 이 세계에서 빌만이 담배에 미친 사람인 것처럼 장면을 묘사한다.

담배는 빌의 성격을 드러내는 분명한 기능을 한다. 무엇보다 흡연은 공적 공간을 사적 공간으로 전유한다. 다시 말해,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 내부에서 담배를 삐뚜름하게 입에 무는 순간 일시적이고 국부적으로 사적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빌은 자신의 개인적 공간을 수호하기 위해 무던히도 신경 쓰는 듯이 보인다. 자신의 부서가 외부로부터 인정받고 더 넓은 공간이 제공되자, 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동료와 거리를 두면서 더 넓어진 개인 공간으로 짐을 옮기는 행동이었다. (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집에서도 아들이 결코 출입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빌은 홀든보다 사회성이 더 두터워 보이지만, 사적 공간에 대한 집착이 별로 없어 보이는 홀든에 비해 자신만의 공간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드러낸다. 이런 그가 수사라는 공적 행위와 양육이라는 사적 행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마인드헌터〉에 사적/공적이라는 대립적 이항을 설정하도록 한다. 그 간극 사이에서 빌은 자신의 의도와 결과가 매번 빗나가는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